미디어아트 예술의 경계를 넘다

미디어아트, 팀랩이 예술과 기술의 경계에서 던진 선언

미디어아트 시작은 2012년, 도쿄의 한 창고 건물에서 시작된 집단이 있다. 팀랩(teamLab). 수학자, 건축가, 애니메이터, 프로그래머로 구성된 이 집단은 스스로를 ‘미술 집단’이라 부르지 않는다. ‘울트라테크놀로지스트 집단’이라는 호칭을 쓴다. 그 선택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선언이다. 예술과 기술 사이의 경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미디어아트

[이미지 1 — teamLab 몰입형 전시 공간]

미디어아트(Media Art)는 전자적·디지털 매체를 핵심 재료로 삼는 예술 형식이다. 영상, 사운드, 데이터, 인터랙션, 네트워크 — 이 모든 것이 조형의 언어가 된다. 그 기원은 1960년대 비디오아트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날의 미디어아트는 그 초기 형태와 사실상 다른 종(種)에 가깝다. 인공지능이 코드를 쓰고, 관객의 생체 신호가 영상을 바꾸고, 위성 데이터가 조각이 된다. 기술의 속도가 예술의 상상력과 실시간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왔다.

이 글은 지금 이 순간 미디어아트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살핀다.

관객이 작품이 되다, 인터랙티브 아트가 바꾼 감상의 문법

미디어아트 공간

[이미지 2 — 인터랙티브 프로젝션 맵핑 설치 작품]

미디어아트의 가장 근본적인 전환 중 하나는 ‘관객’의 재정의다. 전통적 예술 감상에서 관객은 작품 앞에 선다. 그것으로 관계는 완성된다. 미디어아트에서 관객은 작품 안으로 들어간다. 더 정확하게는, 관객이 존재함으로써 작품이 비로소 완성된다.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는 이 구조를 가장 명시적으로 다루는 분야다.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의 <레인 룸(Rain Room)>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수백만 개의 빗방울이 쏟아지는 공간에서 관객은 젖지 않는다. 센서가 인체의 위치를 감지해 빗줄기를 멈추기 때문이다. 관객은 비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의 존재 자체가 비의 패턴을 결정한다. 작품은 관람자를 변수로 품은 알고리즘이다.

“우리는 관객이 작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 플로리안 오트크라사, 랜덤 인터내셔널 공동 창립자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기술 시연에 그치지 않는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한 주요 기관들이 인터랙티브 작품을 영구 소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이후다. 소장 방식 자체가 논제가 된다. 하드웨어는 노후화하고, 소프트웨어는 업데이트를 요구한다. 유화는 수백 년을 견디지만, 특정 운영체제에 종속된 작품은 10년 후 어떻게 보존될 것인가. 미디어아트는 예술의 영속성에 대한 전통적 가정에 균열을 낸다.

국내에서도 이 흐름은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지난 수년간 대규모 몰입형 전시를 정기적으로 유치했으며, 아르코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미디어아트 특화 기획전을 주요 연간 일정으로 편성하고 있다. 부산현대미술관 역시 미디어 퍼포먼스와 사운드아트를 결합한 복합 기획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데이터가 감각이 되다, AI 생성 예술이 열어놓은 창작의 새 지형

생성, 학습, 재해석 — 알고리즘이 다시 쓰는 창작의 정의

미디어아트 체험

[이미지 3 — AI·데이터 기반 설치 작품, Ouchhh]

2022년 8월, 미국 콜로라도주 주립 미술대회에서 제이슨 앨런(Jason Allen)의 디지털 작품이 1위를 차지했다.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Midjourney)’로 만든 작품이었다. 수상 이후 불거진 논쟁은 단순한 공정성 문제가 아니었다. 창작자란 누구인가, 창작이란 무엇인가 — 오래된 질문이 기술의 언어로 다시 제기됐다.

AI 생성 예술(Generative AI Art)은 현재 미디어아트 내에서 가장 빠르게 팽창하는 영역이다. 터키 출신 작가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은 이 분야의 가장 주목받는 이름 중 하나다. 그의 작업은 방대한 데이터셋 — 수십만 장의 자연 이미지, 도시 기록, MRI 데이터 — 을 머신러닝으로 처리해 유동하는 시각 형태로 변환한다. 2023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그의 작품 <Unsupervised>를 구입했다. AI가 MoMA의 소장품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살아 있는 작품이다. 미술관이 자신의 역사를 재료로 제공하고, AI가 그것을 끊임없이 재해석한다.

Ouchhh 스튜디오는 또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이 터키계 데이터 예술 스튜디오는 NASA의 우주 데이터, 뇌파, 문학 텍스트를 대형 프로젝션으로 변환한다. 2021년 설치작 <포에틱 AI(Poetic AI)>는 수백만 건의 과학 논문 텍스트를 신경망으로 처리해 시각적 흐름으로 구현했다. 데이터는 재료가 되고, 알고리즘은 조각도가 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미디어아트는 가장 예민한 질문을 마주한다. AI가 생성한 이미지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학습 데이터로 사용된 수백만 작가들의 작품은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가. 현재 각국의 저작권법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저작권청은 AI 단독 생성물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기본적으로 거부하는 입장이지만, 인간의 창작 개입 정도에 따른 경계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예술이 기술을 앞질렀거나, 기술이 법을 앞질렀다.

건축이 스크린이 되다, 몰입형 전시가 재정의하는 전시 공간과 관람 경험

프로젝션, 빛, 공간 — 미술관 벽이 사라진 자리에 생긴 것

설치 미술

[이미지 4 — 대규모 몰입형 전시 공간]

파리 아틀리에 데 뤼미에르(Atelier des Lumières)는 19세기 주물 공장이었다. 지금은 3,300㎡의 벽면과 천장이 통째로 스크린이 된 몰입형 전시 공간이다. 수십 대의 프로젝터가 사방에서 이미지를 쏘아 올린다. 관람객은 그 안을 걷는다. 클림트의 황금빛 소용돌이가 바닥을 타고 흐르고, 반 고흐의 별이 머리 위에서 회전한다.

이 형식은 ‘몰입형 전시(Immersive Exhibition)’로 불리며, 지난 10년간 전 세계 전시 시장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한 포맷이다. 뉴욕의 <반 고흐: 몰입의 경험>, 런던의 <다 빈치 — 살아있는 경험>, 상하이·서울 등지에서 열린 각종 대형 미디어 전시들은 매 회차 수십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몰입형 전시는 예술을 민주화한다.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문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 클로에 라이트, 큐레이터·문화 비평가

비판도 존재한다. 일부 미술 비평가들은 몰입형 전시가 원작의 맥락을 제거한 채 감각적 스펙터클만 남긴다고 지적한다. 반 고흐의 작품이 그의 정신적 고통, 시대적 맥락, 물성과 분리되어 ‘배경화면’처럼 소비될 때 그것은 예술 감상인가 엔터테인먼트 소비인가. 이 질문은 타당하다. 동시에, 미술관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이들이 몰입형 전시를 계기로 원작을 찾아가는 경로가 생긴다는 반론도 유효하다.

미디어아트는 이 긴장 속에 존재한다. 접근성과 깊이, 스펙터클과 사유, 기술과 의미 — 어느 한쪽을 버리지 않으면서 두 축을 동시에 붙들려는 시도가 지금 이 장르를 움직이는 힘이다.

생성, 학습, 재해석 — 알고리즘이 다시 쓰는 창작의 정의

미디어아트의 유통 구조도 변하고 있다. 2021년 NFT(Non-Fungible Token) 시장의 급등은 디지털 예술의 소유권과 희소성 문제를 전면에 올려놓았다. 비플(Beeple)의 작품 <매일: 첫 5000일>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785억 원에 낙찰된 사건은 디지털 파일이 ‘유일한 것’으로 거래될 수 있다는 시장의 가능성을 실증했다.

미디어아트 전시

[이미지 5 — 디지털·생성 예술 작품]

이후 NFT 시장은 급격히 냉각됐지만, 그 과정에서 파생된 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온체인 아트(On-chain Art) — 작품 데이터 자체가 블록체인에 영구 저장되는 형식 — 는 현재도 Art Blocks 같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단순한 투기적 거래를 넘어, 알고리즘 작품의 원본성과 보존 가능성을 기술적으로 보장하려는 시도다.

더 중요한 변화는 작가와 관객의 관계 구조다. 플랫폼을 통해 작가는 갤러리나 경매사 없이 작품을 직접 유통할 수 있게 됐다. 컬렉터는 작품을 구매하면서 동시에 작가의 미래 수익 일부를 공유하는 구조(로열티 스마트 계약)가 가능해졌다. 기술은 예술의 경제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고 있다.

미디어아트가 제기하는 것들, 기술 시대의 예술이 남기는 질문

미디어아트는 결코 기술의 전시가 아니다. 그것은 기술을 통해 시대의 질문을 형상화한다. 데이터가 감각이 될 수 있는가. 알고리즘이 감정을 만들 수 있는가. 네트워크가 공동체를 대체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미디어아트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 작품은 그 질문을 가시화할 뿐이다. 관객은 그 앞에서 자신이 이 시대와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를 감지한다. 그 감지의 순간 — 스크린이 몸에 닿고, 데이터가 감각이 되는 그 찰나 — 이 미디어아트가 존재하는 이유다.

예술은 언제나 그 시대의 도구로 말해왔다. 지금 시대의 도구는 코드이고, 서버이고, 센서이고, 알고리즘이다. 미디어아트는 그 도구들로 만든 가장 솔직한 자화상이다.

 

AweStruck는 지금 이 시대에 만들어지고 있는 예술을 가까이에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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